왕의 남자
1.대가집마당-낮
신명나는 풍물소리.
광대패의 오방색 깃발이 바람에 펄럭인다.
마당에 마을 상민들이 반원 형태로 둘러서 있고,
술상이 차려진 대청마루엔 집주인으로 보이는 늙은 양반이 앉아 있다.
광대들의 살판(땅재주)과 버나(접시돌리기)가 어우러져 펼쳐지고 있다.
구경꾼들, 신기한 재주에 모두 신이 나는 표정이다.
신명나는 장단이 정리되며 광대들이 사라지자,
어느새 마당 한 편에 설치된 외줄 위에 광대 하나가 올라 서 있다.
치마저고리 차림에 각시탈을 쓴 공길이다.
누군가의 등장을 알리는 장단이 시작된다.
말뚝이탈을 쓴 광대 하나가 도포를 입고 우스꽝스러운 걸음으로 등장한다. 장생이다.
외줄 위를 보던 구경꾼들 말뚝이의 동작에 웃는다.
장생 줄밑까지 걸어 와 멈춘다.
줄 위를 한번 올려다보고 줄을 오르기 시작한다.
광대패들의 장단 잦아든다.
공길
(올라오는 장생을 보고 줄을 건너 쪼르르 도망가며)
저 겁 대가리 없는 놈 좀 보소.
예가 어디라고 여길 올라 오냐?
냉큼 내려가라, 이놈아.
장생
(경사진 줄을 다 올라서)
저년 말버릇 좀 보게.
내가 이 대가집 맏아들이다. 이년아.
공길
상판을 보니 상놈 중에서도 상놈인데 어디서 도포를
주워 입고 양반이라 하느냐, 이놈아.
장생
자 어르신네 행차하시니, 잘 봐라~
첫발을 떼던 장생, 괜히 발을 헛딛고 겁먹은 표정을 짓다가 한 손을 뒷짐 지고 외줄을 건넌다.
공길, 장생이 줄을 타고 건너오자 경사진 줄을 타고 도망치듯 쪼르르 땅으로 내려간다.
공길
(줄밑에서 장생의 걸음을 과장되게 따라 걸으며)
느릿~ 느릿~
오뉴월 쇠불알 늘어지듯 걸으니 성질 급한 사람은
못 보겠네.
장생, 맞은편에 다다라 과장되게 가슴을 쓸어 내린다.
장생
휴~ 저기서 보기엔 얼마 안 되는 거 같아 마음 푹
놓고 왔다 죽을 똥 쌀 뻔했네.
내 이번엔 네년이 남의 집 서방하고 붙어먹다 들켜
허겁지겁 도망가는 걸음을 뵈줄테니 한번 볼테냐?
하고는 아낙네들 치맛자락을 잡듯 도포자락을 잡고 잰걸음으로 쪼르르 달려 맞은편 끝에 가 선다.
공길
낙동강 오리알 떨어지듯 똑 떨어져 뒤질 줄 알았더니
제법이구나.
장생
내 이제 신나게 한판 놀아 볼 것인데,
이 모습을 보면 처녀 할미 할 것 없이 정신이 팔려
사내가 아랫도리를 훔쳐도 모르니 네년도
아랫도리 단속 단단히 하고 보거라.
공길 얼른 아래춤을 손으로 가린다.
구경꾼들 웃는다.
장생 성큼성큼 줄 위를 걸어 가운데로 와 허궁제비(줄을 튕겨 다리사이로 앉았다 오르기)를 한다.
공길
아이고 이놈아,
니 다리사이 두 동네가 한 동네 되것다.
장생
(멈추더니)
아이고, 이년아. 두 동네고 한 동네고 간에
똥꼬가 저릿저릿한 것이 오줌이 마려워 못 놀것다.
내 오줌이나 한번 싸고 계속 놀련다.
(바지춤을 풀고 내릴 시늉한다)
공길
에끼 이놈. 예가 어디라고.
점잖으신 어르신네들 앞이니. (사이)
얼른 꺼내 나랑 한번 맞춰보자, 이놈아.
공길과 장생의 넉살에 구경꾼들이 연신 웃음을 터뜨린다.
대청 위의 집주인 양반, 공길에게서 음흉한 눈길을 떼지 못한다.
<jump>
장생, 장단에 맞춰 화려한 외줄타기를 선보인다.
공길, 줄 위에서 노는 장생의 밑에서 신명나게 춤을 춘다.
주인집 양반, 줄타기는 아랑곳없이 공길만 바라보다 곁에 선 집사에게 뭐라 지시한다.
집사, 손짓해 꼭두쇠를 부르자 꼭두쇠가 냉큼 달려간다.
양반, 공길을 바라보며 꼭두쇠에게 귀엣말을 한다.
꼭두쇠, 연신 굽실거리며 양반의 귀엣말을 듣고 몇 차례 고개를 끄덕인다.
줄 위에서 겅중 겅중 뒷걸음질치던 장생, 꼭두쇠와 양반의 모습을 본다.
신명이 가시는 지 걸음을 뚝 멈추고 땅에 주저앉듯 줄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털썩 앉는다.
앉아 꼼짝 않는다.
의아하게 바라보던 구경꾼들 동요한다.
장생, 앉은 자세 그대로 몸을 한쪽으로 기울이더니 땅으로 낙상한다.
공길, 장생에게 달려들어 몸을 살핀다.
광대들, 얼른 꼭두쇠와 양반의 반응을 살핀다.
꼭두쇠, 화난 표정으로 장생을 노려본다.
장생,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툭 털고 일어나 탈을 확 벗어 들고 양반을 노려보다 사라진다.
양반 “에헴~”하고 뒤틀린 심사를 내보이며 일어나더니 사라진다.
꼭두쇠, 방으로 들어가는 양반을 쳐다보다 걸어가는 장생을 노려본다.
공길, 각시탈을 머리 위로 올리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장생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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